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세계지도: 조지아, 폴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
러우전쟁으로 유럽에 새로운 철의 장막이 세워지고 있다. 러시아의 조지아 영토 점령, 폴란드의 군비 증강, 발트 3국의 방어선 구축까지. 냉전 종식 후 30년 만에 다시 그어지는 경계선
고요해진 철길, 세워진 새로운 장벽
*이 글은 KBS 다큐멘터리 우크라이나 임팩트 2부. 시작된 지각변동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철길은 고요하다. 전쟁은 많은 것을 멈춰 세웠다. 하루 종일 열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역들이 늘어간다. 간혹 서쪽 유럽을 오가는 열차가 경적 없이 달릴 뿐이다.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며 밤의 저편으로 세상을 연결하던 고리들이 끊어져 녹슬고 있다. 러시아와 맞닿은 국경은 폐쇄되고 새로운 철의 장막이 세워지고 있다.
냉전이 끝난 뒤 안보에 손을 놓았던 유럽 각국에선 군비 증강이 국가의 우선 정책으로 떠올랐다. 푸틴의 전쟁은 장기화되면서 결국 북한의 참전으로 이어졌고, 복잡한 외교적 셈법 속에서 북중러 삼각연대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다. 전쟁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기존 국제질서는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딜레마에 놓인 조지아
남오세티아 접경, 러시아군이 둘러싼 마을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길게 뻗은 카프카스 산맥을 따라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경도 자연스럽게 그어졌다.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이어지는 카프카스 산맥 아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석유와 가스가 풍부한 아제르바이잔이 자리한다. 산맥의 북쪽 지역은 러시아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백여 킬로미터를 달려 오디시라는 마을에 다다랐다. 이 지점을 지나면 분쟁 지역인 남오세티아다. 남오세티아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러시아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오디시 마을은 남오세티아 지역으로 돌출돼 있다. 마을 전면의 북쪽과 좌우 양측은 러시아군의 통제 지역이다. 1991년 남오세티아가 조지아로 병합되면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러시아는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아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오디시 마을을 둘러싸고 러시아군 초소와 군사 시설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말라버린 개울이 조지아와 남오세티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간혹 조지아 지역 거주민이 허가 없이 이곳을 넘을 경우 러시아군에 체포되거나 총격을 받기도 한다.

조지아 남오세티아 접경 지역 오디시 마을 지도. 러시아 국기가 표시된 러시아군 초소들이 마을을 삼면에서 둘러싸고 있으며, 중앙에 조지아 오디시 마을 위치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날의 침공
조지아의 비극은 2008년에 시작됐다.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옆에 있던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방금 조지아를 침공했다'고 귓속말로 통보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알게 된 주최국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평화의 제전을 기념하는 폭죽과 전쟁의 불길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조지아는 러시아 침공 불과 닷새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거리엔 조지아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장갑차의 잔해가 나뒹굴었다. 조지아는 우크라이나처럼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EU 가입을 목표로 꾸준히 노력해 왔다. 러시아 침공 전 우크라이나가 그랬듯 군사동맹 나토의 옵저버 국가로서 연합 군사 훈련에도 참가하며 유럽화의 길을 걸어왔다.
수도 트빌리시에는 미소 냉전을 승리로 이끈 레이건 대통령 조형물이 생길 정도로 서방을 향한 열망은 강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에도 미국과 유럽은 움직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남오세티아처럼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압하지야도 독립 국가로 인정한 뒤 군대를 주둔시켰다. 조지아 영토의 20%가 러시아군 관할에 들어간 것이다.
EU 가입 협상 중단과 러시아 관광객 수용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조지아 내 안보 불안감은 확산됐다. 급기야 조지아 정부는 유럽연합 가입 협상을 중단하고, 오는 2030년에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정부가 입장을 바꾸자 조지아 시민들의 비판은 거세졌다.
조지아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인 고리는 소련 시절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다. 1991년 독립 이후 조지아 내 소련 시절 동상은 모두 철거됐지만 이곳만큼은 스탈린의 유산이 남아있다. 스탈린이 이용했던 전용 열차도 보존돼 관광 상품이 됐다. 인구 370만의 조지아에서 관광은 주요 국가 수입원이다. 유럽 국가들이 현재 러시아 관광객 유입을 전면 차단한 것과 달리 조지아는 적극 수용하고 있다. 조지아에서 러시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이곳 고리의 스탈린 박물관이기도 하다.
박물관 내부 벽면과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전시실 곳곳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스탈린 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기록물들과 그의 유품들로 가득하다. 그가 죽기 전 집무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했다. 조지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자국의 안보 위기로 간주하고 이를 극복할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조지아의 스탈린 박물관을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의 인터뷰
조지아의 생존 전략, 유럽의 에너지 수송로 허브
조지아의 생존 전략 가운데 하나는 유럽으로 가는 주요 에너지 수송로의 허브가 되는 것이다. 발트해를 가로질러 러시아의 에너지를 유럽에 공급해 온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전쟁 직후 파괴되자 유럽은 급히 해결책을 찾았다. 이때 카스피해의 석유와 천연가스관이 지나는 조지아는 지정학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받게 됐다.
흑해를 바라보는 조지아 포티로 가는 길에 우리는 항구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따라 에너지 수송용 객차들이 길게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포티 항구에선 물류를 배에 실어나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의 물동량은 전쟁 전에 비해 20% 가까이 늘어났다.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로 북쪽으론 전략적 통로를 개척할 수 없는 조지아로선 흑해 바다를 통해 유럽으로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지아는 흑해 연안에서 포티 항구를 거점으로 남쪽의 바투미, 북쪽의 아나클리아 항구를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아나클리아에선 중국이 대규모 항만을 건설 중이다. 흑해를 통해 유럽과 아프리카로 가는 거점 항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폴란드
2025년 8월 15일, 바르샤바 국군의 날
전쟁이 몰고 온 거대한 파도 속에서 조지아가 흑해로의 새로운 출구 전략을 모색 중인 가운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유럽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2025년 8월 15일 폴란드 바르샤바. 우리는 국군의 날 행사장인 구도심 쪽으로 향했다. 가족 단위의 폴란드 시민들이 행사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 군악대가 입장한다. 폴란드 언론들도 분주해진다.
언덕 위까지 시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폴란드 대통령은 러시아를 최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며 군비 증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무적이 아니다. 2015년부터 시작된 폴란드군 현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산 K2 전차가 도착한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우리는 K2 전차 천 대를 포함한 기갑 전력을 더 늘려야 한다."
러-우 전쟁을 계기로 폴란드는 미국과 유럽산에 치우쳤던 자국 방위 산업의 외연을 넓히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도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폴란드는 러시아 침공 가능성에 대해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폴란드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나라가 강제로 분할 점령되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 2만 명이 넘는 군 장교와 지도층 인사들이 소련군에 의해 카친 숲에서 학살됐던 기억을 갖고 있는 폴란드는 전쟁으로 인한 정세 변화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정신적 단절, 우크라이나
깊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처
우리는 다시 폴란드 국경 도시 헤움을 거쳐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도로 옆 울창한 나무들은 잠시나마 전쟁이 몰고 온 긴장과 공포를 잊게 해준다. 하지만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우크라이나는 부쩍 잦아진 공습으로 상처는 더 깊어 보였다. 파괴된 마을 곳곳에서 복구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미사일과 드론을 피해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고 있다.
공습을 당한 거주 지역은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지만 잔해를 치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파괴된 도로를 메우고 공공 기관을 다시 세우는 일이 더 긴급하고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대도시라 하더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대규모 드론 공장을 만들어 키이우 등 주요 도시에 대한 보복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최전선에선 러시아군의 막대한 손실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군 병력의 소모를 유도하고, 우크라이나 도시 전역을 대상으로 밤낮없이 공습을 가해 전쟁 피로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매일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시달리지만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전쟁 수행 의지를 꺾으려는 러시아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다.

각인된 증오심과 사라진 푸시킨 동상
이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도 러시아와의 단절을 선언한 상태다. 전쟁이 3년 7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전격 합병하기까지 우크라이나에선 자신의 혈연적 문화적 정체성은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우크라이나 최고 명문 대학인 타라스 셰우첸코 키이우 국립대학. 도시를 가로지르는 캠퍼스 안에는 수많은 문인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있고, 한국의 김소월 시인의 동상도 서 있다.

우크라이나 추모 리본들이 걸린 울타리. 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흰색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나 푸시킨 등 슬라브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동상이나 초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우크라이나 출신이 아니라 러시아 영토 출신이란 이유로, 대학은 물론 전국적으로 흔적을 지우는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역은 우크라이나 영웅 역으로, 고리키 거리는 옛날 우크라이나 명칭으로, 투르게네프, 고골, 다 이름을 바꿨다. 동상도 다 없어졌다. 오데사에 가면 푸시킨 동상이 아주 좋았는데 가보니까 다 이제 없어졌고, 고리키,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작가뿐만 아니라 정치인, 문화인, 배우까지 러시아 관련된 동상은 거의 다 없어졌다. 이름도 다 바뀌었다.
대신 항복을 거부하고 러시아군에 처형당한 병사 마치예우크시키처럼 군인들의 밀랍 인형이 세워지고 그들의 이름이 공공장소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이 전쟁이 어떤 형태로 끝나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정신적으로도 결별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미국의 참여 없는 안전 보장은 신뢰 못 해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5번째 방문 중이던 지난 2025년 8월, 미국 백악관에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 논의하고 있었다. 미국 방문에 앞서 벨기에에 모여 회담 예행연습까지 했던 유럽의 지도자들은 섣불리 전쟁을 끝내는 것보다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이 먼저라며 트럼프를 설득했다.
알래스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온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점령지가 표시된 지도까지 보여주며 전쟁을 이제 끝내야 할 때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3국 정상이 직접 만나 논의하자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종전이나 휴전 일정 논의는 미뤄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형태로든 미국이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에 관여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안전 보장도,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은 없는 상태다. 우리는 국경을 벗어나는 길에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유럽연합의 군수 지원 물자 행렬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전선에서 총성이 멈출 때까지는 이 전쟁이 어떤 결말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은 이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지각변동, 고요해진 철길과 새로운 장벽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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