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시절 ICMB 기지를 방문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드러난 우크라이나 핵포기의 딜레마와 NPT 체제의 한계를 살펴본다.
구소련 시절 ICMB 기지를 방문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드러난 우크라이나 핵포기의 딜레마와 NPT 체제의 한계를 살펴본다.
구소련 시절 ICMB 기지를 방문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드러난 우크라이나 핵포기의 딜레마와 NPT 체제의 한계를 살펴본다.
저자 소개
금철영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탐사보도팀 등을 거친 뒤에는 주로 통일외교안보 분야와 다큐 제작파트에서 보낸 시간이 많습니다. <통일대기획> <국권침탈100년 특별기획> <광복70년 특별기획>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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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철영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탐사보도팀 등을 거친 뒤에는 주로 통일외교안보 분야와 다큐 제작파트에서 보낸 시간이 많습니다. <통일대기획> <국권침탈100년 특별기획> <광복70년 특별기획>에 참여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했어야 했나" ICBM 기지 현장 취재

구소련 시절 ICMB 기지를 방문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드러난 우크라이나 핵포기의 딜레마와 NPT 체제의 한계를 살펴본다.

우크라이나는 왜 핵무기를 포기했을까

핵확산금지조약인 NPT (Non-Proliferation Treaty)체제는 수명을 다한 것일까. 핵무기 확산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북한의 핵개발을 평화적으로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던 2007년. 북핵 폐기를 위해 참고할 만한 사례들을 취재하고자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우크라이나식 핵폐기'는 평화적으로 역내 핵무기를 이전하고 핵무기 연구와 관련된 핵과학자들까지도 관리하는 방식의 핵폐기여서 국제적으로도 많은 조명을 받았다. 물론 북한에게 적용하기는 매우 무리가 있는 방식이었지만 말이다.

구소련 ICBM 기지 현장을 가다

나는 프로그램 제작팀과 함께 당시 우크라이나 외교부와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 피에르보마이스크에 있는 구 소련시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취재할 수 있었다.

특별허가를 받아 1급 보안구역인 기지안에 들어서자마자 '텔(TEL)'이라고 불리는 이동식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퀴가 모두 16개인지 18개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북한에서 열병식을 하면서 바퀴가 잔뜩달린 이동식 차량에 미사일을 싣고 나오는데 이게 바로 '텔(TEL: Transporter Erector Launcher)'이다. 풀어 쓴 영문내용 그대로 미사일 운반차량과 발사장치가 결합된 차량이라고 보면 되겠다. 다시말해 이 거대한 차량에 ICBM을 싣고 다니다가 직각으로 세운뒤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든 차량이다.

구 소련시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지
구 소련시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지

TEL과 사일로 시설은 어떻게 작동할까?

냉전시대에는 이렇게 '텔(TEL)'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지하에 미사일을 숨겨 놨다가 불시에 발사하는 방식을 많이 연구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사일로(Cylro)'다. 우크라이나 피에르보마이스크 기지는 구 소련시절 핵심적인 전략 핵무기 발사시설이었기에 텔은 물론 사일로도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텔'을 둘러본 우리는 곧바로 '사일로(Cylro)', 즉 거대한 맨홀 뚜껑 같은 것이 열리면서 지하에 있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발사되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둘러봤다. 좁은 공간에 성인 3명정도 탈수 있는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지하에는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발사대와 작은 관제시설 같은 공간도 있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우크라이나식 핵폐기'로 국외 반출된 상태여서 ICBM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일로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해 보였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에만 2만2천여개의 부품이 들어갔다는 설명도 이어졌는데, 이런 무기와 시설을 1960년대에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30년이 지나 돌아보는 부다페스트 각서

그래서일까. 1990년대 들어 소련 연방이 해제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게 됐을 때, 서방세계는 물론 러시아 정부도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핵 강국으로 떠오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핵무기를 자국 영토 밖으로 이전하는데 합의했다.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각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 러시아의 엄청난 압력도 있었지만 불과 몇해 전에 발생한 체르노빌 사태의 후유증으로 인해 '원전관리도 제대로 못하는데 수천기의 핵무기가 웬말이냐'는 여론도 한몫을 했다.

이전 비용과 폐기에 들어가는 비용 일체는 물론 핵과학자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이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데 따른 엄청난 인센티브가 제공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막대한 돈은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냈지만 말이다.

핵과학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체르노빌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앞서, 나는 2007년에도 북핵 폐기의 방법을 모색했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었다. 나는 우크라이나의 핵과학자들은 과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핵과학자들이 유럽연합이 출연한 기관과 관련 건물에 사무실이 모여 있다고 해서 그 곳을 가봤는데 관리자급 몇몇 인사들을 제외하곤 사무실에 있는 핵과학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소문해서 키이우 시내와 인근 도시에 살고 있는 그들을 찾아가 보았다. 집에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집에 머물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인터뷰 요청에 응한 한 핵과자의 말은 이렇다.

"사무실에 있으면 오히려 할일이 아무 것도 없어 힘듭니다. 집에 있으면 책을 쓸 수는 있지요"

각서와 함께 남겨진 핵과학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마련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남은 핵과학자들은 적은 급여를 받고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호시탐탐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는 나라나 단체들이 이들과 접촉을 시도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관리가 안 되는' 핵과학자들은 없다고 했다. 유럽 각국의 기금 출연으로 세워진 곳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마당에 이들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행방이 묘연해 진다면 우크라이나 정부로서도 매우 곤란한 일일 터이다.

유럽국가들로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우크라이나의 핵폐기를 실현한 마당에 핵과학자들의 관리에 실패해서 핵확산 우려가 생긴다면 재양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난 핵포기의 딜레마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강대국들의 약속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침공으로 사실상 깨지게 됐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등 러시아계 주민들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든, 러시아가 주장하는데로 우크라이나에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알수 없는 나치세력의 척결을 내세웠든 결과는 분명하다. 핵폐기 당시에 강대국들이 약속했던 우크라이나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핵포기는 잘못된 선택이었나?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핵폐기는 잘못된 결단이었을까. 우크라이나가 소련 연방을 벗어나 독립국가로 첫발을 내딛던 1991년으로 돌아가보면,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소련 연방에서 갓 독립한 우크라이나가 핵보유를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은 나름 신빙성이 있다.

구 소련의 붕괴로 오랜동안 지속됐던 냉전이 해제되는 듯했고, 그 시대의 유산이던 핵무기는 많은 경제제재를 각오하면서까지 끌어안고 있어야할 안전판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 러시아를 떠나 유럽과 나토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싶어했던 우크라이나의 많은 지도층 엘리트들은 핵폐기를 통해 '정상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선호했다. 그 결과가 우크라아니식 핵폐기의 실현이다.

NPT 체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강대국의 조율과 과감한 비용부담, 그리고 신생국에겐 달콤할 수 밖에 없는 인센티브 제공은 물론 핵확산금지조약 NPT(Non Proliferation Treaty)체제를 수호하겠다는 관련국들의 의지가 이뤄낸 비확산의 성공 사례로 비춰졌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사용 위협으로 NPT 체제 유지는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우크라이나가 핵폐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번 사태가 던지는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북한의 NPT 탈퇴와 연이은 핵실험 (북한은 NPT를 탈퇴하긴 전인 2006년 10월에 이미 1차 핵실험을 했다)으로 서서히 위협받기 시작한 NPT체제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애써 이를 외면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안보지형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 취약점이 부각되는 나라가 어찌 우크라이나 뿐이겠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실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현실은 단순히 과거의 선택에 대한 평가를 넘어선다. 전쟁 발발 3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는 드론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양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최전선과 다를 바 없는 '전장'이 된 현실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핵포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복잡해졌다. 저공비행하는 공격용 드론들이 강을 따라 이동해 도시를 공격하고, 구조대마저 노리는 잔혹한 전술이 민간인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국제 안보 체제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생생한 현장과 드론전의 실상, 그리고 변화하는 현대전의 모습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우리 취재진이 제작한 KBS 시사기획 창의 우크라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장의 현실을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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